묘호 종(宗)
세자가 왕위를 계승한 경우
조선의 2대왕 정종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난 결과로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정종의 정치적 판단과 결정은 거의 동생 이방원의 뜻에 따라서 이루어고, 재위 2년만에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조선의 3대왕 태종
국가 운영을 위한 제도를 정비함과 동시에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세력들을 축출하였고, 행정체계를 정비하여 6조 중심의 행정체계를 완성하여 자신의 국정 장악력을 강화하였습니다.
조선의 4대왕 세종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여 이상적 유교정치를 구현하였습니다.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측우기와 같은 과학 기구가 제작되는 등 백성들의 생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문화 정책이 추진되었습니다.
조선의 5대왕 문종
세종이 세자가 섭정을 하는 데 필요한 체제를 마련하여,1445년부터 세자의 섭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문종 시대의 정치 방법과 분위기는 세종 후반기와 크게 변함이 없었습니다.
조선의 6대왕 단종
왕의 자리를 노리던 작은아버지 수양대군(세조)에 의해 왕의 자리를 빼앗겼습니다. 이후 단종복위운동에 실패하였고, 서인으로 강등되어 유배지인 강원도 영월에서 승하하였습니다.
조선의 8대왕 예종
어린 나이에 등극하였지만 강력한 왕권을 만들고자 매우 엄격하게 통치하였습니다. 훈구파 세력과 대립하여 개혁정책을 펼치고자 하였으나, 재위 13개월만에 죽음을 맞았고 갑작스러운 죽음에 훈구파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설이 제기되었습니다.
조선의 9대왕 성종
12세의 어린 나이로 갑작스럽게 즉위했지만, 25년 동안 재위하면서 성실하고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했습니다.
조선의 제도와 문물 정비에 힘썼으며, '경국대전'을 완성하였습니다.
조선의 11대왕 중종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반정으로 중종은 갑작스럽게 왕위에 올랐습니다. 중종은 세력을 확장한 훈구파를 견제하기 위해 사림 세력을 등용하지만, 급진적인 개혁안은 반발을 불러오고, 끝내 기묘사화를 통해 사림은 제거되었습니다.
조선의 12대왕 인종
조선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 동안 재위한 왕입니다. 인종의 계모인 문정왕후의 권력욕에 시달렸으며, 자신도 병약하여 재위 9개월 만에 사망하였습니다. 야사에 의하면 인종이 문정왕후에게 독살당했다는 설이 전해집니다.
조선의 13대왕 명종
인종이 죽고 문정왕후의 어린 아들이 왕위에 올라 수렴청정을 한 문정왕후의 소윤과 인종의 세력이었던 대윤이 다시 갈등을 일으켜 을사사화가 일어났습니다. 네 차례의 사화를 거치며 사림 세력은 훈구 세력을 누르고 살아남았지만, 그 사이에 백성들의 삶은 처참히 망가졌습니다.
조선의 17대왕 효종
병자호란으로 형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서의 8년간 볼모생활을 했습니다. 즉위 후 은밀히 북벌계획을 수립, 군제의 개편, 군사훈련의 강화 등에 힘썼습니다. 그러나 북벌의 기회를 얻지 못했고, 충청도와 전라도에 대동법을 실시했고, 상평통보를 화폐로 유통시키는 등 경제시책에 업적을 남겼습다.
조선의 18대왕 현종
즉위하자마자 상복 문제를 빌미로 한 당파 간의 권력 투쟁이 일어났습니다. 기해예송에서는 서인이, 갑인예송에서는 남인이 승리를 거두게 되어, 강력한 왕권이 확립 되려했으나 현종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조선의 19대왕 숙종
수차례의 환국으로 강력한 왕권을 구축했습니다. 경신환국-기사환국-갑술환국을 통해 붕당 간의 견제와 균형이 붕괴되고 숙종은 서인과 남인 사이에서 절대적 권력을 휘둘렀지만, 숙종이 누구를 사랑하느냐는 집권당이 달라지는 아주 중요한 사안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인현왕후와 장희빈이 희생되었습니다.
조선의 20대왕 경종
장희빈의 아들입니다. 숙종은 세자를 숙빈 최씨 사이에서 낳은 연잉군으로 교체할 속심이었으나, 대리청정을 맡은 경종은 매우 신중한 처세로 숙종과 노론에게 빌미를 제공하지 않고 즉위했습니다. 경종은 희빈 장씨가 왕비로 책봉되었다가 희빈으로 격하되어 사사된 후부터 병약해졌고, 즉위 4년차에 병세가 급격히 악화하여 4일 만에 급사했습니다
조선의 24대왕 헌종
8세 때 임금이 되었고, 순조때부터 이어져 온 세도 정치를 막지 못했습니다. 조선은 세금 제도가 엉망이 되고, 이양선이 나타나는 등 나라 안팎으로 혼란이 계속됐습니다.
조선의 25대왕 철종
헌종이 아들을 낳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고, 권력을 유지하고 싶었던 세력은 자신들이 휘두를 수 있는 왕실의 먼 친척 철종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글도 익히지 못한 채 농사를 짓다가 왕이 된 철종. 자신이 농민이었던 경험을 살려 농민을 위한 정책을 실시하려 했으나 권력을 쥐지 못하여 아무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철종 대에 농민 봉기가 가장 많이 일어났습니다.
조선의 26대왕 고종
대한제국 제1대 황제입니다. 명성황후와 대원군의 세력다툼 속에서 일본을 비롯한 열강의 내정 간섭을 겪었습니다.
고종은 명성황후시해 이후 왕궁을 버리고 러시아 공관으로 거처를 옮기는 아관파천을 단행했습니다. 1년만에 환궁하여 국호를 대한제국, 연호를 광무로 고치고 왕을 황제라 칭하여 독립제국임을 선포하으나, 일본에게 외교권을 일본에 빼앗겼고 우리나라는 주권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조선의 27대왕 순종
대한제국 최후의 황제. 일본은 한일신협약, 정미칠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국정 전반을 일본인 통감이 간섭할 수 있게 하였다. 또 정부 각부의 차관을 일본인으로 임명하는 이른바 차관정치를 시작하였습니다. 국내정치는 일본인의 손으로 넘어갔고, 결국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와 함께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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